행운 총량의 법칙

행운 총량의 법칙을 믿어.

누구에게나 견딜 수 있을 만큼의 행운과 그에 대응하는 불행이 찾아와. 그건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에도 깊게 관여하고 있다고 믿어. 어떤 사람이 태어나 사람과 만나고, 어떻게든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고, 행복을 알게 되고, 그 모든 일이 행운이라고 한다면, 그것과 이별하게 되는 순간이 죽음. 그게 그 사람의 불행인 거야. 만약 행복하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죽음을 불행이라 여기지 않을 테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절대적으로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고, 절대적으로 불행하기만 한 사람도 없다. 평온했던 날에도 잠들기 직전마다 슬퍼지기 시작하는 건 분명 이런 이유. 내가 힘들 때마다 외웠던 말이야. 이렇게 힘들다면, 언젠가는 내 행운이 빛을 발하겠지… 라는 허무맹랑한 믿음에 근거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그래서 결국 너랑 만났어. 행복하다고 느낄 때마다 너와 함께한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간 순간이 되진 않을까, 라는 마음도 적지 않았지만. 어차피 찾아올 불행이라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굳게 다짐하고.

네가 죽은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어.
나는 죽지 않겠구나.

사신을 직접 눈으로 본 죄일까, 너를 살리고 싶었던 내 마음일까, 명보다 일찍 죽어버린 네가 원했던 걸까, 그래서 얄미운 신이 나만은 살려두기로 했던 걸까.

나는 몰라.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눈을 뜨면 네가 없어. 너와 함께하기 전까지는 혼자 쓰던 침대가 분명한데 왜 이렇게나 넓게 느껴지는지, 그 절망으로 하루를 시작해. 매일 똑같은 뉴스, 똑같은 사람에게서 오는 메일, 똑같은 얘기만 하는 잡지. 따분하다고 느낄만한 일상 속에서도 매일매일 불행이 찾아와.

키라는 잡혔어. YB 창고였대. 키라가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장소. 그 이후에도 사람은 매일같이 죽었어. 나와 함께 했던 사람이 하나씩 죽어갔어. 그때마다 장례식에 찾아갔고 그 외에는 집 밖으로 나올 일이 거의 없었어. 검은 옷만이 계속해서 닳았어. 집에 남은 네 흔적의 색이 바래고, 너와 먹기 위해 사뒀던 케이크가 썩고, 네가 쓰던 볼펜이 고장나고, 너와 함께 고른 거울이 깨졌어. 나는 평생을 이렇게 살겠구나. 소중했던 사람이 하나씩 사라지고, 날 거둬줬던 가족이 죽고. 친구가 죽고. 그렇게 세상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에는 이런 말을 해.

오랜 생을 대가로 한 불행은 이런 거구나. 나는 바란 적도 없는데.

다니던 대학원을 애써 졸업했어. 키라 사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땄어. 그게 기쁘지 않았어. 네 희생으로 나를 채운 것만 같아서. 그게 내 전부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너와 살던 집은 그대로 두고 가족들에게 돌아갔어.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나를 선택해준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 사람들까지 모두 죽고 난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나는 늙지도 않고 하루하루 살아만 있었어. 어젯밤에도 잠이 들었어. 네 생각을 하면서. 한 번만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은 눈을 뜨니 이상하게 몸이 가벼웠어. 매일같이 새하얀 천장을 보면서 일어나는 게 그토록 힘들었는데. 마음이 이상할 만큼이나 편해서 고개를 돌렸어. 그곳에 네가 눈을 감고 있었고.

네가 자는 모습이 가장 사랑스럽게 죽어있는 식물 같다고 생각했어.

언제나처럼 잠투정을 부렸어. 연인의 투정이라도 내 아침 투정만은 이길 수가 없다던 네 말이 생각나서. 너를 껴안고, 그 순간만큼은 어떤 슬픔도 공허함도 느끼지 않으면서. 언제나처럼, 웃으면서 말했어.
 

이 순간이 나의 마지막 행복이라면,
이제 그만 나를 죽여달라고.

 
네 표정을 읽는 일은 항상 어려웠어. 그렇지만 오늘은 알 것 같아. 마지막은, 그래.
죽을 만큼 사랑스러운 표정이었어.